브랜드와 브랜딩 이야기

시중은행 - 헤리티지가 갖는 파워

브랜딩동 2025. 5. 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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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지난 몇 년 동안 잘 사용해 왔던 신용카드의 사용기간이 만료되어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혜택이 말도 안 되게 좋은 카드여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카드사 입장에서는 꽤나 손해(?)가 발생하는 카드였던지 이제는 단종이 되었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새로 발급받을 카드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같은 카드사에서 카드를 살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보통 시중은행들은 금융그룹 내에 카드사를 함께 보유하고 있고, 나 역시 내가 사용하는 은행과 같은 금융그룹의 카드사에서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주 거래은행 역시 대학교 때부터 같은 은행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처럼 브랜드 전환율이 높은 사람이 20년을 넘게 같은 은행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참 드문 일이었다. 이 은행을 고르게 된 이유도 참 사소한데,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거래 은행이었고 캠퍼스에 ATM기가 이 은행 것밖에 없어서 지금 거래 은행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의 흐름이 전개되며, 왜 은행은 한번 거래 은행을 고르면 잘 바뀌지 않을까, 나아가서 다른 산업에서는 리딩 브랜드들이 참 자주 바뀌는데, 왜 은행은 아직도 4대 시중은행이라고 불리는 KB, 신한, 우리, 하나가 업계를 장악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여전히 금융업계를 주도하는 4대 시중은행

 

  첫 번째 이유는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 규모의 확대에 따라 생산물 한 단위당 비용이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은행업은 이러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이다. 그 이유는 은행업은 고정비가 매우 높은 산업으로 전산 인프라, 지점 네트워크, 인력 운영 등 고정비 지출이 매우 크지만, 이러한 인프라를 미리 갖춰 놓으면 고객이 늘어난다고 해서 인프라에 들어가는 비용이 고객수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쌓인 고객들의 신용 이력, 소비 패턴, 자산 흐름 데이터는 위험관리나 대출심사, 상품 설계에 필수적으로 활용되면서 시장에 먼저 진입하여 고객 데이터를 쌓아온 시중은행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는 오프라인 영업점

 

 두 번째 이유는 은행업이 '신뢰성'이라는 가치가 그 어떤 산업보다 중요한 가치로 작용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은행업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재화인 '돈'을 맡기는 산업이다. 그렇다보니 지금까지 사람들의 자산을 안전히 관리해 온 역사, 이 산업에서 1등 브랜드만이 가질 수 있는 대표성 등에 기반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인터넷 은행과 같은 신규 브랜드들이 단기간에 확보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자연스럽게 신규 브랜드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기존 시중은행들에게는 '경쟁우위'로서 작용하게 된다.  시중은행들에게는 그 해에 '1등 은행'이 누가 되었는가가 굉장한 화두이고, 1등 은행이 되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태연하지만 이렇게 '1등 은행'임을 홍보하는 것 역시, 은행업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매년 1등 경쟁을 벌이는 시중은행들

 

 세 번째 이유는 은행업 자체가 브랜드 전환 시의 거래 비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주 거래은행을 바꾼다고 했을 때 가볍게 생각나는 거래 비용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다. 먼저 공과금, 통신비, 보험료, 청약 등 모든 자동이체 항목을 변경해야 한다. 또한 회사 급여계좌 등록도 변경해야 하고, 자동이체 항목 변경 시 원래 받고 있던 우대금리, 수수료 면제 등을 다시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기존 은행에 보유 중인 금융 상품 이전을 위해 해지/재가입이나 수수료 발생을 감수해야 하고, 간편인증이나 토큰, OTP와 같은 모든 모바일 환경 설정을 변경해야 한다. 이게 얼마나 큰 거래 비용인지를 실감하려면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마실 커피의 브랜드를 전환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소 가던 카페가 아닌 다른 카페로 걸어 들어가,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은행업에서의 브랜드 전환은 이에 대비하여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 

 

 사실, 어떠한 브랜드를 선택할 때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주 거래은행을 고를 때만큼 신중하지 않았던 적이 없고, 또 그렇게 고른 브랜드를 이렇게 장기간 유지해 본 적도 없어서 매년 주 거래 은행 변경을 고민해보게 된다. (그러다가 전술한 거래 비용 때문에 매년 포기하게 되지만......) 요즘 인터넷 은행들을 보면 이러한 거래 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해 비대면 계좌 개설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주 거래 은행을 나와 같이 사소한 이유로 골랐다면 브랜드 전환을 고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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